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 (문단 편집) === [[흥선대원군|대원군]]의 귀환 === 경복궁에서 전투가 이어지던 23일 새벽 2시, 일단의 일본군이 [[운현궁]]으로 몰려들었다. 그중 일본 공사관의 오카모토와 흥선대원군의 심복 정운봉은 7년여간 은둔하던 대원군에게 '구국'에 나설 것을 청하였다. 고민하던 대원군은 구면인 일본 공사관의 서기관 스기무라 후카시에게 오토리 공사를 대신하여 조선 영토를 요구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받아낸 후, 재집권에 동의하였다. 날이 밝고, 총성이 잦아들자 대원군은 일본군의 호위 하에 경복궁에 입궁하였다. 하지만 약 20여년 만에 재집권한 대원군은 일본이 민심을 통제하기 위한 얼굴마담에 불과하였고, 그를 국정에서 배제하였다. 이에 대원군은 청군과 동학농민군에 밀서를 보내어 항일 연대를 꾀하다가 발각되어 결국 다시 실각하였다.[* 그후 이듬해 [[을미사변]] 때에 대원군은 재차 일본군의 얼굴마담으로써 형식적으로 재집권했으나 역시나 곧 밀려났고, 이것이 그의 4번째이자 마지막 집권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